국회 광주청문회_슬롯의 나머지 부분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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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찬 앵커 :

이번에는 이 청문회에서의 5.18 관련부분을 다시 되짚어 보겠습니다.

보도에 김형근 기자입니다.


김형근 기자 :

광주 교외 망월동 묘역의 한 자락을 가득 채운 주검들, 80년 5월 그때 영문 모르며 숨져간 그들 가운데는 귀가길 남편을 기다리던 임산부도 있습니다. 당시 계엄사 발표대로라면 이들은 모두 폭도입니다. 과연 그런지 처음으로 밝혀보려 했던 것이 지난 88년의 광주청문회입니다.


“자위권을 허용해 달라 이랬습니까?”


최 웅 (당시 11공수여단장) :

어렵더라도 좀 참고 내가 이 문제는 건의해서 곧 연락을 해주마.


김형근 기자 :

시민의 희생을 막기 위해 발포는 물론 자위권 행사조차도 자제했지만 저항이 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광주가 그때 혼란하지 않았음은 청문회에서 당시 군 관계자 스스로 인정했습니다.


소준열 (당시 계엄분소장) :

은행을 털거나 이런 일이 있게 되면 아주 큰 문제가 되는데 그런 사고가 전혀 없었던 거는 매우 참 다행한 일이고 역시 광주시민들의 시민정신을 높이 평가할 일이라고 봅니다.


김형근 기자 :

또, 광주진압군 지휘체계의 이원화 문제와 발포 명령권자를 가리는 것도 청문회의 핵심사항이었습니다. 그러나 신군부의 핵심으로 당시 광주를 들락거린 특전사령관은 자신의 책임을 전면 부인 했습니다.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 :

저는 절대 관여를 안했습니다. 그거는 허무맹랑한 소리이고…….


김형근 기자 :

광주청문회는 석 달 동안 계속됐지만 진정한 관심사인 발포와 과잉진압의 책임자와 사망자수는 가려내지 못하고 의례적이고 책임회피적인 답변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주영복 (당시 국방부장관) :

전혀 나지 않습니다. 모르는 사실입니다


김형근 기자 :

당시 증언대에 선 정호용씨 등, 7명은 광주청문회와 관련하 위증죄로 이미 고발되어 있는 상태이고, 이번 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전두환씨와 함께 이제는 답변 안하면 그만인 특혜

가 아니라 칼날 같은 검찰의 심문을 받아야할 운명입니다.


“부여된 임무를 수행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도 명예롭고 대한민국의 군도 임무수행을 명예롭게 했다.”


그들이 과연 당시 국민을 지키는 군으로서 명예롭게 임무를 다한 것인지 이제 성년이 됐을 당시의 소년 상주뿐 아니라 국민 모두는 5월 광주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합니다.

KBS 뉴스, 김형근 입니다.